조선군 식단이 부실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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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조선은 예산이 존나 적은 나라였다.

세금이 한 세율이 10%밖에 안됨.
그리고 조/용/조 제도라고 짱개에서 유래된 세금제도를 갖고 있었는데.

1> 토지세 10% 가량
2> 몸으로 떼우는 노역(일종의 세금)
3> 현지 특산품을 바치는 거 (=>이게 나중에 문제가 되서 쌀로만 납부하는 대동법으로 바뀌지)

그리고 병사들은 양인들 위주로 뽑는데,
군졸로 뽑히는 1명을 2~3명의 보인이 군포 등을 납부해서 세금으로 보조하는 스타일임.
(조선시대 군적에는 병력이 약 30~40만 정도 올라가 있었슴. 조선시대 양인(평민) 인구가 장부 상으로 300만명 정도 됨.)

이 군졸로 뽑히는 사람은 농번기에 예비군훈련을 받고,
한번씩 수도나 북방(여진족), 남방(수군-왜구담당)으로 가서
짧게는 몇달에서 반년 이상 교대로 근무를 해야 했슴.

이 때 병사로 뽑힌 사람은 자기 갑옷과 창,
심지어는 기병의 경우엔 말도 자기 돈으로 준비해야됨.
심지어 식량도 자기 집에서 들고와야 됨.
(모든게 셀프임)




그래서 이걸 다 갖추려면 존나 비싸거든.
그러니 예비군 입소 시 군용품 대여점 같이 빌려주는 업자들이 생김.
심지어 예비군 대신 복무해드립니다. 같은 대신 군복무해주는 업자들도 생김.
(영화로도 나옴. 이정재가 임진왜란 때 '대립군'으로 복무하는 거)

조선은 본래 진관 체제라고.. 상비군 형태의 군대가 변방에 배치되어 있는 스타일이었는데..
왜구들이 각잡고 수만명 단위로 몰려오면, 소규모 수백, 수천명 단위 군대로는 개털려버림.

그래서 만든게 제승방략 체제..
각 지의 군사들을 소집해서, 중앙에서 지휘관만 파견해 지휘하는 체제임..
(해당 지역 지휘관이나 관료가 지휘하면 반란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중앙에서 파견함)




어쨌든, 이런 제승방략 체제도 일본군이 워낙에 빠르게 진격하니까..
병력이 모이기도 전에 점령되버리거나, 지휘관이 도착하기도 전에 박살나고, 흩어짐(이일의 상주 전투)

그나마 일본군 진격루트에서 벗어나있던
전라도는 제승방략체제로 5~8만명을 모아서 북상하다,
용인전투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1600명에게 쳐발려서 흩어짐.

경상도에선 약 8만명의 의병-관군이 훗날 모여서 게릴라전을 벌임.

일본군이 한양에 머물다가 불안해서 남해안으로 후퇴한게..
이순신 함대가 바닷길을 막아서 해상 보급로를 끊은 것도 크고,
후방에선 만만찮은 수의 조선 관군-의병 게릴라들이
후방을 괴롭혀 육상 보급로를 위협한 점이 큼 (경주, 충주 등이 탈환됨)
(물론, 북쪽에선 조명연합군이 평양성 탈환 이후 계속 남진함. 게다가 뒤통수에선 권율의 행주대첩)

어쨌든 명나라군이 참전을 했는데...
명나라 황제 명령으로 약 100만석의 쌀을 보내옴..

이 쌀 1석이라는게 대략.. 일본 쌀 1석(180리터)는 약 144kg의 무게로.. 2가마니 정도인데..
일본 기준으로는 성인 1명이 1년 내내 먹는 쌀의 양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쌀 1석은 일본 쌀보다 적긴 한데.. 명나라도 도량형이 다 달라서 좀 골치아픔..

근데, 대충 이걸로 조선사람 다 먹여살린 것처럼 과대포장하곤 하는데...
현실적으로 명나라군 식량 정도로 하기에나 충분한 수준임.. 약간 민간에 풀어서 도움이 되긴 했는데..
본래 군대는 밥을 엄청 먹거든.. 게다가 저게 돈 역할도 하고, 군마나 황소도 먹여야 되기 때문에,
기타 콩이나 말먹이용 풀이라던가 그런 잡곡들도 엄청 많았다.

문제는 이걸 실어나를 인력이 부족했다는거.. 그래서 명나라군 기병 군마들이 남진하다가,
말먹이용 풀이나 콩 같은 식량과 보급품이 부족해, 말들이 떼거지로 굶어죽고 난리가 남..

그래서 이여송이 존나 지랄하고 난리남..
그래서 조선 조정이 백성들을 대거 징발해서 명나라 식량, 보급품 나르는데 존나 투입함..

그리고 나중에 정유재란 때 보면, 조선군 병력이 존나 줄어들고, 명나라군 비중이 엄청 커지는데...
아마 명나라군한테 보낼 쌀농사 짓고, 식량, 보급품 운송하는데 조선군 죄다 해산시켜서 수송-보급 업무에
종사한게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그런 명령을 내린 흔적도 있고..

명나라 짱개 새끼들 이때도 조선에서 엄청나게 갑질 심해서,
조선 관리나 조선 무장, 고위 지휘관들 상대로..행패 존나게 부렸슴..
경주성을 탈환할 조선의 경상도 고위급 지휘관인 박진도 명나라 듣보잡 장수새끼한테 구타당해서 후유증으로 죽음.

어쨌든, 명나라 짱개들은 자기나라 전쟁도 아니고, 나름 식량도 충분히 가져왔던 놈들이라..
어찌 비리비리하게 먹을 생각이 없었지.. 그래서 조선 마을에 들어가면.. 이 새끼들 존나 잘먹으려고 난리였고..

조선이 본래 화폐경제가 발달이 안된 나라였는데..
명나라는 반면에 화폐경제가 발달이 잘된 나라였슴..

조선이 화폐경제가 왜 발달을 못했느냐??
조선 이전의 고조선이나 삼국시대, 가야, 이런 나라들은 명도전, 철정, 패총의 조개화폐 등등..
여러 화폐를 사용했슴.. 이게 특히나 청동이나 철 같은걸로 만들어져, 이거 녹여서 쓰면 갑옷, 창, 칼, 화살촉, 도끼, 곡괭이 등..
온갖 물건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현물이나 다름없기도 했거든..

근데, 조선은 정부가 화폐를 만들었는데, 이게 가치가 들쭉 날쭉해..
동전 함량 같은게 들쭉날쭉, 크기도 들쭉날쭉.. 그러다 보니 화폐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는거야..

그래서 화폐경제가 개박살나고, 그럴 바에 쌀을 화폐 대용으로 삼기 시작하거든..
쌀, 혹은 무명 베필이 돈 역할을 하기 시작함..
(그래서 조선인들이 쌀농사랑 베틀에서 삼베같은거 짜는데 환장한거임 => 이게 돈임)

반면, 명나라는 화폐경제가 발달해있고, 상인들이 현물(쌀, 콩 등 식량과 무기)를 들고 다니며,
은자로 지불하면 바로 바로 갖다주니까.. 명나라 군대는 그냥 은자만 들고 다니는거야..
근데 조선에선 이게 안먹힘.. 그래서 얘네들이 약탈을 하는거지. 그리고, 조선 마을에 들이닥치면,
"두부 내놔" 이 지랄하면서 난리침..

그래서, 당시 조선 백성들 사이에선 왜군은 얼레빗(듬성듬성 약탈), 명군은 참빗(꼼꼼하게 약탈) 이란 말이 나돌게 됨..

반면, 조선군은.. 존나 가난했고, 물자와 식량이 항시 쪼들리니 밥 자체를 제대로 못먹을 수 밖에...
농사를 지어야 되는데, 전쟁 때문에 농사도 못짓고, 수확도 안되고, 식량조달도 어렵고.. 사람들 죄다 피난가고,
농지가 황폐화됨... (그나마 다행인게 임진왜란도 약 1년 정도만 빡시게 치룸. 몇년 쉬었다가 다시 정유재란 터짐)

요약.

1.조선군은 군대 장비와 식량은 셀프로 준비해야됨.
(물론 나중엔 군대 자체가 알아서 조달-이순신도 병력들 동원해 물고기 잡고, 소금 생산해서 팔아서 군비 조달했슴.
의병들은 일본군이 점령한 관아를 점령해 곳간을 털기도 했는데, 이걸로 도적떼취급받은적도 있는데 관군이랑 싸바싸바해서 대부분 잘해결됨.
일본군 기록을 보면 조선 관아에 식량과 병기가 엄청나게 풍족했다고 기록함.)

2.명나라군은 화폐경제에 익숙해, 은자로 물품 조달하려다가, 조선은 그게 아니다보니 물품조달에 실패해서 약탈하기도 함.
(그래서 조선백성과 조선군인들이 나중에 명나라군을 위한 보급-수송 임무에 상당부분 할당됨)




3.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와 피난, 약탈 등으로 수많은 농경지가 황무지화됨.(식량생산 부족)
(너같으면 일본군이 툭하면 칼뽑아서 사람 죽여대는데, 고향에서 농사짓겠냐? 특히나 정유재란 때는 뭐 홀로코스트 급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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