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래프] 맨시티가 본인들의 세력을 구축한 것은 아스날 사냥으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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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285.webp.ren.jpg [텔레그래프] 맨시티가 본인들의 세력을 구축한 것은 아스날 사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는 2009년 8월. 아르센 벵거 감독은 잉글랜드 이적 시장에 새롭게 떠오른 주요 세력이 아스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었다.

벵거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는 살기 좀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며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일부 팀들이 돈이 더 많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른 클럽 선수들의 임금에 많은 압력을 가하는 일이기도 하죠.”

이는 맨체스터 시티와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 한 이야기지만 주로 시티에 대해 더 이야기했다. 아부다비가 인수한 지 1년만에 시티는 잉글랜드의 이적 시장을 장악했다. 아스날보다 여섯 계단이나 낮은 10위를 차지한 시티는 그해 여름 아스날의 인빈시블 시즌 마지막 남은 선수였던 콜로 투레와 스트라이커 엠마뉴엘 아데바요르를 영입했다. 12개월 동안 시티는 11명의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는데 175m 파운드를 지출하였으며 각 선수의 이적료는 10m 파운드 이상이였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숫자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년 후 시티는 아스날이 챔피언스 리그 예선 경기를 치르기 며칠 전에 가엘 클리시와 사미르 나스리를 영입했다. 이 때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아스날에서 5번째로 시티에 합류한 선수는 2014년 FA로 떠난 바카리 사냐였다. 아스날은 또 다른 인비시블 선수였던 전 주장 패트릭 비에이라와 다시 계약하는 것을 고려하였지만 비에이라 역시 결국 시티로 이적하게 된다. 시티가 계약한 것은 아스날의 미래만이 아닌 과거이기도 한 것이다.

15년 후, 두 팀이 잠재적으로 타이틀을 걸고 결정되는 경기에서 맞대결한다는 사실은 아스날의 꽤 놀라운 부활을 입증한다. 아스날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시티에서 형성된 코치와 함께 여기까지 올라왔으며 시티에서 잉여 선수로 간주되는 두 명의 선수를 영입했다는 것은 그동안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벵거가 2009년 이야기한 임금 인플레이션이 현실이 되었다. 이제 그 때와 마찬가지로 아스날은 시티와 경쟁할 수 없다.

그동안 시티의 소유주인 시티 풋볼 그룹은(CFG)은 강력한 멀티 클럽 시스템을 구축했다. 벵거 감독이 15년전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았다면 벵거 감독은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에게 했던 것처럼 현재 시티에게 제기되고 있는 “재정적 도핑” 비난처럼 시티에게 더 큰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확실한 사실은 시티는 2000년대 말 프리미어 리그의 빅4중에서 가장 힘없고 약한 아스날을 사냥했으며 이것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시티는 최고의 선수들과 계약했다. 그리고 결국 시티는 아스날을 재껴냈다. 2010-11 시즌 이후 시티는 13시즌 가운데 12시즌에서 아스날을 앞지르며 우승도 차지한다.

아스날에 암흑기가 온 것에 아스날 본인들의 책임은 얼마큼일까? 확실히 벵거 감독은 너무 오래 아스날에 매달렸으며 2018년 팀을 떠났을 때 구단은 이미 시대에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벵거 감독의 후임인 우나이 에메리 감독에게 적절한 지원 조차 할 수 없었다. 에메리 감독은 분명히 훌륭한 감독이였다. 하지만 아스날은 다른 분야에서도 실패하였다고 느낄 수 있다. 시티의 115개의 혐의 가운데 가장 이른 혐의가 아스날 선수들을 뽑아가기 시작한 2009년~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시티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2009년 당시 아스날은 이와 같은 거래를 포함하여 프리미어 리그에 더 엄격한 재정 통제를 요구할 수 있는 훨씬 더 강력한 위치에 있었다. 벵거는 이에 대해 불만이였다. 당시 아스날 보드진들이 프리미어 리그측에 충분히 로비를 열심히 했을까?

이는 또한 2009년 여름에 시티가 아스날의 핵심 선수 두 명을 영입하고 분위기를 조성했을 때 시티가 또 다른 빅4 클럽에서 거대한 선수 영입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재는 오랫동안 잊혀진 이야기지만 바로 존 테리이다. 당시 시티 감독이였던 마크 휴즈 감독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만큼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던 상황이였다. 테리에게 당시 주급으로 20만 파운드가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당시 이 주급은 첼시가 테리와 재계약하기 위해서 줘야했던 기준이 되었다.

임금 인플레이션에 대한 압박은 여러곳에 존재했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 이적료와 임금 시장을 무너뜨린 클럽인 첼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첼시는 억만장자 소유지인 로만 아브로비치와 함께 이를 견딜 수 있을만큼 강력했다. 아스날은 잉글랜드와 유럽 전역 존재하는 큰 손들에게 선수들을 계속 잃어갔다. 2005년 비에이라를 시작으로 2006년 애슐리 콜, 2007년 티에리 앙리. 2009년이 되니 선수가 팔려나가는 것이 습관이 된다.

현재는 아스날 보드진들 또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이적 시장 관련하여 꽤나 호전적인 인물들 중 한 사람들이 되었지만 2009년에는 무엇이 자신들을 휩싸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자금 조달과 필요한 경제에 초점을 맞춘 이들의 사업 계획은 2003년에 시작된 아브라모비치 효과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으며 2008년에는 셰이크 만수르의 시티 인수로 인해 클럽은 이미 반쯤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데인이 2022년 발간한 자서전에는 순간을 알리는 한 줄이 존재한다. 2006년 데인은 아스날이 아브라모비치와 비슷한 수단을 가진 새로운 소유자 또는 적어도 이러한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미디어 그룹인 그라나다는 클럽 지분의 9.9%를 매각할 예정이였으며 데인은 이를 진지한 투자자가 지분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데인은 아부다비의 사실상 최고 경영자이자 2008년부터 CFG의 회장인 칼둔 알 무바락을 만났었다고 말하였다. 칼둔이 떠나가고 이후 스탱 크랑키가 아스날의 주식을 매입하였다.

데인은 이듬해 아스날의 지분 매각과 관련하여 다시 한번 칼둔과의 만남을 추진하였지만 칼둔은“타이밍이 적절치 않네요.”라는 말을 하였다. 데인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말하진 않았지만 칼둔이 아스날을 향해 다가왔다면 매우 다른 아스날과 매우 다른 시티가 예고됐을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아스날은 다른 현실에 적응해왔다. 처음에는 비효율적으로, 최근에는 강력하게 말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시간들과 기회가 낭비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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